굴업도핵폐기장반대
› 기록
기록
굴업도핵폐기장반대
목록구분 | 사건 |
---|---|
식별번호 | E00006 |
사건구분 | 사건대응 |
사건시작연도 | 1994 |
사건종료연도 | 1995 |
사건의 경과와 주요내용 | 1994년 12월 15일 언론을 통해 서해 앞바다 굴업도에 핵폐기장 건설 계획이 보도 되었다. 정부는 이틀 뒤 굴업도 옆 덕적도에 500억 투자발표를 하고, 두 달 뒤에는 원자력위원회에서 계획을 확정했다. 당초 정부는 굴업도가 지질구조가 단단하고, 수심이 깊어 항만 짓기에 용이하다고 주장했는데, 한국자원연구소가 핵폐기장 부지를 조사하던 중 굴업도 반경 3킬로미터 구역에서 해저활성단층의 징후를 발견했고 정밀조사 결과 최소 2개의 활성단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. 결국 95년 11월, 굴업도는 핵페기장 후보지에서 완전히 해제되었다. |
사건대응의 주요내용 | 당시 5가구 10여 명만 살고 있던 굴업도이지만, 인근 덕적도 주민을 포함한 반대주민들은 인천과 서울 등을 오가며 거리집회를 열었고, 서울 명동성당, 인천 답동성당에서의 200일 간의 농성을 진행했다. 그 과정에서 인천시민을 포함하여 20여 명 가까이 구속되고 부상당했고 주민 1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. 핵없는 사회를 위한 전국 반핵 운동본부는 초기부터 핵폐기장의 위험성을 주민들에게 알려나갔고, 굴업도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인 굴업도 지질조사를 진행하였다. |
관리번호 | 1138 |